알 카디리의 부모가 언론의 자유 못지않게 중요하게 가르쳐온 저항의 권리는 2016년에 발표한 차기 앨범 『브루트Brute』의 주제가 되었다. 표지에는 폭동 진압 복장을 갖춘 텔레토비가 등장했다. 음악적으로는 그녀의 이전 곡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익숙했겠지만, 이번 앨범은 유리 깨지는 소리, 총성, 그리고 책임 없는 미국 경찰 체제에 대해 말하는 전직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경사 셰릴 도시의 목소리 샘플로 차별화되었다.
나는 일렉트로닉 음악계에서 발매하는 음반마다 이렇게 엄격한 주제적 틀을 갖춘 아티스트가 얼마나 드문지 짚고 넘어간다. 알 카디리가 웃으며 말한다. “그래요, 제 아이디어는 비교적 정교해요. 저는 음반마다 작은 선언을 내놓았어요.” 그런데도 그녀의 음악은 개념의 무게에 좀처럼 짓눌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음반 뒤에 깔린 제 생각을 읽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들은 이 앨범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겠죠. 궁극적으로 그 관계는 음악과 맺어지는 거니까요.” 그녀는 말한다.
내가 알 카디리의 공연을 처음 보았던 2019년 겨울밤, 그녀는 음악과 개념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그녀는 2000년대 아랍 팝 디바들과 퀴어 운동 분야에 있는 친구들에게 영감을 받은 페르소나와 미학을 특징으로 한 2017년 음반 『샤니라』의 곡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드래그 퀸 못지않게 화장을 진하게 한 이성애자들이었어요. 저는 드래그와 아닌 것 사이의 경계, 그 극단적 여성성을 이용하고 싶었어요. 샤니라는 누구라도 구현할 수 있는 페르소나예요. 그녀는 사악한 여왕이고, 기가 막히게 멋지죠.”
그녀의 음반 중에서 가장 느슨하면서도 활기찬 이 음반은 쿠웨이트의 퀴어 친구들과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졌으며, Grindr(성소수자들을 위한 소셜 네트워킹 앱) 대화에서 인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곡들의 초안을 들은 어머니는 그녀가 너무 멀리 갔으며, 보수적인 쿠웨이트 사회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저는 음반에서 지나친 부분은 삭제해야 했어요.” 알 카디리는 이렇게 말한다. 『샤니라』가 발표된 뒤에 아랍 세계 곳곳의 친구들이 퀴어 파티에서 그녀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건 제가 이 음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에요. 여자아이들이 제 음악을 듣고 있었던 거예요!”
알 카디리는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쿠웨이트로 돌아가, 그곳에서 자랐다. 그녀는 태어난 나라에 다시 간 적은 없지만, 프랑스계 세네갈인 감독 마티 디오프가 자신의 데뷔작인 「애틀랜틱스」의 음악을 부탁했을 때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느낌이 들었다. 다카르를 배경으로 한 낯설고 몽롱한 이 영화는 2019년 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알 카디리의 사운드트랙은 가장 부드럽고 섬뜩한 음악을 선보이고, 웅웅거리는 베이스는 디오프의 길고 모호한 바다 장면에 울려 퍼진다. “그 기회는 제 인생을 정말로 바꿔놓았어요. 영화음악을 하는 건 제 평생의 꿈이었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다니며, 작업마다 매혹적인 아이디어의 프리즘과 독특한 소리를 위한 캔버스를 만들어낸다. 2021년 초에 발매된 최신 앨범 『중세의 여자M edieval Femme』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그녀가 다시 한번 유년기의 주제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열한 살 무렵, 그녀는 학교에 갈 수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그때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극심한 공상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저는 ‘좋아, 난 퇴학 당할 거야.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 뭐 이런 상태였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공상에 빠져서 고통을 모른 척한 거죠. 그때 저는 정교하게 꾸며낸 시간 여행으로 중세의 판타지를 상상했는데, 그 속에서는 제가 남자가 되곤 했어요. 쿠웨이트에서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여자로 자라다가,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이 문화에서는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단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알 카디리는 후에 여성들이 쓴 고전 아랍 시집을 읽으면서 발견한 관능과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 성욕에 깜짝 놀랐다.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아랍 세계에서 여성의 성욕을 금기시하는 풍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저는 지극히 우울한 갈망을 감지했어요. 이 여성들은 정말 많이 원했거든요. 거의 모든 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요구와 요청, 욕구와 같았어요. 덕분에 욕망과 우울의 관계에 대해서, 그 둘이 내 삶에서 어떻게 겹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죠. 저는 우울을 욕망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정말 많이 원하기 때문에 움직이거나 제대로 활동할 수도 없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공상과 시 독해는 이슬람 정원의 백일몽을 거니는 것을 상상하는 『중세의 여자』(알 카디리는 이 앨범을 ‘그녀’라고 지칭한다)로 결합되었다. 이 음반은 『샤니라』의 소리에서 벗어나 아랍과 유럽 양쪽의 중세음악과 유사하게 신시사이징한 음악으로 향한다. “이 앨범은 우리를 사로잡아, 욕망과 우울, 고통, 그리고 감각적 갈망이 일치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분위기에요.”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점은 최근 그녀의 어떤 작품에서보다 더 두드러지는 알 카디리 자신의 애처로운 보컬과 더불어, 하품과 멜로디 사이의 빈 공간으로 대체된 리듬의 결핍에서 모두 들을 수 있다.
이 음반의 인상적인 커버는 알 카디리의 어머니 투라야 알-박사미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메시지 1」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90년, 쿠웨이트 침공 2주 전에 그려졌다.1 그림에는 짙은 남색을 배경으로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가 있다. 머리 위에 먹구름이 몰려드는 사이 새 한 마리가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전해준다. “엄마는 나쁜 예감을 느꼈어요. 사실 우리 엄마는 귀신처럼 운세를 맞히거든요. 제가 쿠웨이트에 갈 때마다 엄마는 커피 찌꺼기로 운세를 점쳐요. 이 그림에서 저는 여자의 얼굴에 반했어요. 그녀의 눈에는 홍채가 없어서 절대 접근할 수 없을 것같이 보이잖아요. 우울감에 빠진 사람이 그렇거든요. 마치 껍데기 같아요. 사람이 있다는 건 알지만, 닿을 수는 없어요.”
앨범을 만들면서 알 카디리는 4년 동안 머물렀던 베를린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이사한 첫해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립된 채 시간을 보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자신의 성격을 “집고양이처럼 무척 게으르다”라고 표현한 그녀는, 그 덕분에 집에서 복고풍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고 한다. “비디오게임은 저를 유년시절과 이어주거든요. 그냥 잠옷을 입은 채 과일 주스를 마시면서 사탕을 미친듯이 많이 먹고 싶어요. 뱃속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게임을 하던 좀 더 순수했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정원이 있고 모퉁이를 돌면 산책로가 나오는 새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용하고 숲이 우거진 교외 지역이에요. 생전 처음 보는 나무와 꽃이 있는 언덕에 둘러싸인 예쁜 멕시코 동네인데, 초록이 우거지고 아름다워요. 어쩐지 운명인 것 같아요.”
알 카디리는 운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쿠웨이트 침공 며칠 전에 불길한 징후가 보이는 그림을 그린 것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난 도시 다카르에서 촬영한 영화의 음악을 만들게 된 것도, 정원을 산책하는 내용을 담은 앨범을 발표하는 시점에 자연에 둘러싸인 새 집에 도착하게 된 것도 모두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키타박 막투브”라는 아랍어 표현을 사용한다. 당신의 책은 이미 쓰여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에게 “운명”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본다. “운명은 우리를 우리 인생의 경로로 이끌어가는 환경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인생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일까?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말한다. “선택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선택은 여전히 같은 길로 우리를 데려가죠. 자유의지는 매일의 현실이고, 운명은 장기적인 길인 셈이에요.”
“저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믿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한다. 그녀의 인생에서 음악은 모국어이자 기억의 저장고이고, 아이디어를 표면화하며 파고들 수 있는 공간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다른 길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작곡을 그만두는 날은 제가 삶의 의욕을 잃었거나, 극심한 관절염에 시달리거나, 어쩌면 더는 멜로디를 흥얼거리지도 못할 정도가 됐을 때일 거예요. 오직 죽음만이 제가 음악 만드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