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건축이라고 하면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는 식의 긍정적인 속성과 연관 짓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건축물이 덜 온화한 감수성을 표현하는 환경에서 지어지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지배, 적개심, 통제 역시 건축의 고유 속성이다. 고대의 군사 요새들은 적을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정치적 적대감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사자 문장은 원치 않는 방문자들이 마을과 사유지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접근 금지의 경고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무단 침입자, 스케이터보더, 비둘기를 내쫓기 위해 고안된 공격적인 방호물들이 그득하다. ‘악의적 건축’에서 이런 적대감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세워진 것들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배치된 건물, 소유권 분쟁에 항의하기 위해 설치된 건물, 전통과 우아함이 살아 있는 곳으로 알려진 지역에 번쩍번쩍한 네온 색으로 집을 칠하는 것 등. 이들 수상한 건축물들은 개인적인 싸움을 깊숙이 드러내 보인다. 예를 들어 베이루트에 있는 그러지(Grudge, 원한이라는 뜻-옮긴이)는 분노를 표현하는 얇은 조각판 같은 구조의 건물이다. 폭 400센티미터에 불과한 4층짜리 모더니즘 스타일의 이 건물은 형제의 집에서 바다를 볼 수 없도록 막기 위해 세워졌다. 또 다른 형제간의 싸움은 보스턴에서 대지의 경계선을 두고 일어났는데, 동생이 형의 집으로 들어가는 빛과 공기를 막아버리기 위해 작은 식민지풍의 주택을 지었다. 지금은 불화 상대들 사이에 얽힌 자극적인 이야기가 관광 거리가 되었다. 분노가 당사자들보다 더 오래 산 셈이다. 그러나 건축 평론가 에드윈 히스코트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불화의 건축에도 나름의 교훈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악의적인 건축은 나쁜 이웃에 대항하는 인간적인 가능성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준다.”고 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건축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 예로, 약 15년 전 에디스 메이스필드의 작은 시애틀 집 때문에 개발에 착수하려던 콘도미니엄의 설계가 바뀐 일이 있었다. 자신을 밀어내려는 개발업자들의 노력에 그녀가 끝까지 버텼던 것이다. 19세기에 사라예보에 있던 이나트 쿠체(Inat Kuca, 악의적인 집이라는 의미) 역시 비슷한 저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집 센 집주인이 새 시청을 짓고 싶어 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국에다 자신은 원치 않는 일이니, 자신의 집을 천천히,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한 조각 한 조각 고스란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해서 뜻을 관철한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항하는 이런 식의 대담한 방해 행위는 눈을 찌르거나 코에 주먹을 먹이는 형태의 건축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피어 리뷰: Edward Krasinski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초현실적인 위트에 대해 큐레이팅하다. Arts & Culture 상에 대해 생각함 예술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Arts & Culture 행복한 중간, 해피 미디엄 평균 예찬. Arts & Culture 망가진 아름다움 미술품이 곤경에 빠질 때 Arts & Culture 부수 효과 예술 형식으로서의 인스타그램 필터. Arts & Culture 문구 경쟁 인플루언서의 언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