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몇 년간 아주 힘든 시기를 버텨낸 끝에 결국 런던의 〈셀프리지Selfridges〉와 〈리버티Liberty〉백화점을 비롯한 대규모 거래처를 확보하게 되었다. 1990-2000년대에 아일랜드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사업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고 시아란은 말한다. 그러다가 2008년이 되자 주문이 뚝 끊겼다. 아일랜드는 유로존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 침체에 빠졌다. 그래도 브라이언은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이었기에 한번 놓치면 다시 데려올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2013년에 시아란이 가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뉴어리에 돌아와 있을 때 브라이언의 건강이 나빠졌다. 시아란은 온라인 수업으로 나머지 학위 과정을 대부분 마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를 지휘했다. 브라이언이 건강을 회복하자 시아란은 〈오리오르〉의 타깃을 미국 시장으로 돌렸다. 그는 2014년 말에 뉴욕으로 이주해 2015년 5월에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바이스 미디어〉의 토론토 지사 전체를 단장하는 계약을 따내면서 동부 해안의 세련된 부유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시아란에 따르면 오리오의 쇼룸은 이제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인 트라이베카로 옮겨갔다. 올해 말, 서배너에 고객 휴양지인 <오리오르> 호텔도 개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아란은 매년 몇 가지의 신제품만 출시하는 느린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두세 가지만 추가하고 200종이 넘는 브라이언의 기존 보유 디자인에서 몇 가지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브랜드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면서도 철저히 아일랜드 스타일로 남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오리오는 자국 인재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우수한 업체 다수는 기회를 찾아 해외로 진출했다.¹
시아란과 케이티 앤은 향후 몇 년간 다른 도시에 머무를 계획이지만 뉴어리로 돌아갈 생각도 없지 않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열정이 있다. 그리고 오리오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접착제와 같다.” 케이티 앤이 말한다. 팬데믹을 계기로 이 가족은 인구가 3만 명도 안 되는 고향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뭔가를 믿는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로지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