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 Design

일터에서:
오리오르

브라이언 응이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구를 만드는 아일랜드 가족을 만나다.
사진 by Alex Wolfe.

〈오리오르〉는 한결같이 가족의 사업이었지만, 모든 구성원을 고향인 북아일랜드 뉴어리로 다시 모은 것은 팬데믹이었다. 이 가구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아란 맥기건은 2020년 3월 공장에서 몇 가지 시제품을 확인하러 뉴욕에서 돌아왔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인 여동생 케이티 앤도 이틀 후 런던에서 귀국했다. 그 후 전 세계가 봉쇄되었다.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은 ‘수업’이었다고 시아란은 말한다. “골 때리는 10대 때가 아니라 지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맥기건 가족은 〈줌〉 인터뷰를 위해 식탁 한쪽에 일렬로 늘어섰다. 맨 왼쪽에는 아버지 브라이언, 다음으로 시아란, 어머니 로지, 케이티 앤 순서로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 웹캠의 앵글이 너무 좁아서 가족을 전부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 내내 시아란이 컴퓨터의 방향을 말하는 사람 쪽으로 틀어야 했다.

뜻밖에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다양한 컬래버가 탄생했다. 그중 하나는 손으로 짠 양탄자 컬렉션이다. 강가 수문의 다채로운 푸른색, 해 질 녘에 하늘을 물들이는 분홍과 빨강 등 산책을 다니다가 영감을 받은 색조를 적용했다. 디지털 인쇄 원단과 도니골 원사로 짠 직물, 벽지도 새로 테스트하는 중이다. 대리석, 금속, 가죽, 천, 크리스털 같은 재료를 참신하게 결합할 방법도 찾고 있다. “아일랜드 디자인은 따분하다는 인식이 있다.” 시아란이 종교 그림을 상기시키며 말한다. “하지만 점잖은 디자인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독창적인 결과물에서 ‘점잖음’은 빛을 발한다. 깊은 벨벳 의자, 조각 같은 대리석 테이블, 미드 센추리 스타일의 수납장은 빛과 채도를 높인 광고 사진 속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오리오르> 웹사이트에서 고객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보면 세련된 크리에이티브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이 가구에 기댄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브라이언과 로지가 성장한 1960-70년대 아일랜드에는 디자인에 대한 이런 열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 절박한 문제가 많았던 탓이다.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영국의 지배를 받는 여섯 개 카운티를 아일랜드 공화국이 반환 받기를 바라는 민족주의자와 영국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통합주의자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갈등의 시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뉴어리의 오리오르 가에서 자란 브라이언은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소파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던도크 경계 인근의 럭비 클럽에서 로지를 만났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약 6개월 만에 일자리를 찾아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브라이언은 열여덟이 었고 로지는 갓 열일곱이 되었다. 그들은 패스트푸드점과 호텔에서 일을 하고 시간이 나면 아이 쇼핑을 다녔다. “온갖 색상, 디자인, 깔끔한 선”을 접할 수 있었다고 로지는 회상한다. 아일랜드는 갈색과 회색 천지였는데 코펜하겐에는 총천연색이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구를 들어보거나 밑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했다.

1979년, 코펜하겐에서 지낸 지 3년 가까이 되자 브라이언은 뉴어리로 돌아가 그들을 매료시켰던 덴마크 디자인을 바탕으로 가구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는 당장 <오리오르>를 설립해 여동생을 재봉사로 남동생을 판매원으로 채용하고, 함께 자란 동네 친구에게 소파 천갈이를 맡겼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는 한 주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짬이 생기면 브라이언은 자기만의 디자인을 창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브라이언이 말한다. 브라이언과 로지는 벨파스트에 작게 매장을 냈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로지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구를 밖에 내놓고 거저 나눠 주려 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못 할 거 같다.” 시아란이 말한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브라이언이 대꾸했다.

북아일랜드에서 일하는 것은 위험했다. 브라이언은 승합차로 가구를 옮기다가 영국군에게 무장단체원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또 현지 업체들은 제조사에 재료를 소량으로 공급하려 하지 않아 〈오리오르〉는 해외 거래처를 물색해야 했다. 자연 태닝한 스칸디나비아산 황소 가죽으로 브라이언의 자신의 첫 번째 디자인인 샤녹 소파를 만들었다. 그들은 덴마크의 유명한 원단 제조업체 〈크바드라트Kvadrat〉에서도 재료를 공급받았다. 당시만 해도 〈오리오르〉는 재료를 소량씩 구입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덴마크 가구 전시회에서 〈크바드라트〉 대표가 그녀를 격려하며 이렇게 말하던 것을 로지는 기억한다. “당신들 18미터, 홍콩에서 온 남자가 18미터, 독일 사람이 18미터 주문했어요. 한꺼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이죠.” 그와 반대로 한 영국 상인은 최소 주문 양이 천 미터라고 잘라 말했다.

“아일랜드 디자인은 따분하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점잖은 디자인만 있는 건 아니다.”

처음 몇 년간 아주 힘든 시기를 버텨낸 끝에 결국 런던의 〈셀프리지Selfridges〉와 〈리버티Liberty〉백화점을 비롯한 대규모 거래처를 확보하게 되었다. 1990-2000년대에 아일랜드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사업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고 시아란은 말한다. 그러다가 2008년이 되자 주문이 뚝 끊겼다. 아일랜드는 유로존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 침체에 빠졌다. 그래도 브라이언은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이었기에 한번 놓치면 다시 데려올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2013년에 시아란이 가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뉴어리에 돌아와 있을 때 브라이언의 건강이 나빠졌다. 시아란은 온라인 수업으로 나머지 학위 과정을 대부분 마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를 지휘했다. 브라이언이 건강을 회복하자 시아란은 〈오리오르〉의 타깃을 미국 시장으로 돌렸다. 그는 2014년 말에 뉴욕으로 이주해 2015년 5월에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바이스 미디어〉의 토론토 지사 전체를 단장하는 계약을 따내면서 동부 해안의 세련된 부유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시아란에 따르면 오리오의 쇼룸은 이제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인 트라이베카로 옮겨갔다. 올해 말, 서배너에 고객 휴양지인 <오리오르> 호텔도 개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아란은 매년 몇 가지의 신제품만 출시하는 느린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두세 가지만 추가하고 200종이 넘는 브라이언의 기존 보유 디자인에서 몇 가지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브랜드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면서도 철저히 아일랜드 스타일로 남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오리오는 자국 인재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우수한 업체 다수는 기회를 찾아 해외로 진출했다.¹

시아란과 케이티 앤은 향후 몇 년간 다른 도시에 머무를 계획이지만 뉴어리로 돌아갈 생각도 없지 않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열정이 있다. 그리고 오리오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접착제와 같다.” 케이티 앤이 말한다. 팬데믹을 계기로 이 가족은 인구가 3만 명도 안 되는 고향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뭔가를 믿는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로지가 말한다.

(1) 직원 중 30-40명은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들이다. 〈오리오르〉는 현재 전 부문에 인재를 채용 중이며 최근 아일랜드로 이민 온 두 여성을 소파 제작 기술자로 영입했다(전통적으로 아일랜드에서는 제작 기술자가 주로 남성이었다). 처음으로 채용한 덴마크인 직원이기도 하다.

(1) 직원 중 30-40명은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들이다. 〈오리오르〉는 현재 전 부문에 인재를 채용 중이며 최근 아일랜드로 이민 온 두 여성을 소파 제작 기술자로 영입했다(전통적으로 아일랜드에서는 제작 기술자가 주로 남성이었다). 처음으로 채용한 덴마크인 직원이기도 하다.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