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처음으로 수중에서 조사한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 선박은 클로틸다선의 잔해였다. 이 배는 1860년 100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을 태우고 앨라배마로 향했는데, 미국에서 노예 수입을 금지한 지 52년이 지난 후였다. 이 항해는 비밀리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중) 범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람들은 도착 후 배를 침몰시켰다. 플레웰렌이 당시의 발견을 회상한다. “클로틸다선은 조사가 가능한 배들 중 상태가 가장 양호합니다. 난파가 일어나면 보통 말 그대로 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잔해들이 수백 미터까지 흩어지지요. 하지만 이 배는 비밀리에 침몰시킨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온전한 편입니다. 또 그러한 이유로 이 배는 진짜 역사를 보여줘요. 선체 내부의 노예들이 감금되었던 좁은 공간을 보면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플레웰렌은 해양 보전과 수중 유적 자원의 보전을 위해 힘쓰는 비영리단체인 ‘다이빙 위드 어 퍼포스’의 이사이며 많은 시간을 잠수를 하며 보낸다. 사실 육지와 바다의 발굴 현장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그곳에서 발생한 공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한 병치를 인식하고 있는 플레웰렌은 영혼을 무겁게 짓누를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 “저에게 위대한 자연은 자유이며 위대한 탈출처럼 느껴져요. 일을 통해 저는 땅, 토양, 물과 연결될 수 있고, 자연의 중요성과 자연과 일상생활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플레웰렌을 들뜨게 하는 것은 그녀가 수중에서 접하는 물질 문화다. 유물들은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우리가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세계를 분석하는 것, 시각예술에 조각, 콜라주, 공연의 형태로 영감을 주면서 그녀의 작업에 자양분이 된다. 때때로 유물은 더 큰 진실을 말한다. 그녀는 1865년부터 1900년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의 의복 생활과 장신구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한다. “텍사스의 흑인 지주 가족이 1871년에 사용하던 물건을 현장에서 발굴하여 보고 있었어요. 작은 신발 밑창과 신발의 단추를 채우는 데 쓰는 후크가 있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어요.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한 사람이 바지나 셔츠 한두 벌로 1년을 나야 할 정도로 각박한 옷 배급이 이루어졌습니다. 신발 없이 지내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아동용 신발 밑창과 단추 후크에서 흑인 가족들의 욕구와 노예해방 후 새로운 인생을 꾸려가려는 그들의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웰렌은 고고학과 인류학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을 뛰어넘어 “흑인 페미니스트의 틀을 통해 활동하는 이야기꾼이자 예술가로서” 내적인 지식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그녀는 이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