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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shion

미셸
라미

파리의 대사제.
글 by Robert Ito. 사진 by Luc Braquet.

미셸 라미는 베네치아 대운하 인근의 호텔에 묵고 있다. 얇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닷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라미는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브일뿐만 아니라 가장 특이한 패션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다양한 행사에서 그녀는 스핑크스 모양의 머리 장식을 쓰고 이마에 흡착판을 붙였다. 기이한 형태의 커다란 재킷에 짧은 반바지와 30센티미터 높이 통굽 부츠를 신기도 했다(영국판 『보그』의 ‘옷장 속으로’ 시리즈 촬영을 위해서였다). 남편의 머리와 섬뜩할 정도로 똑같이 제작한 손지갑을 들고 온 적도 있다.¹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있냐고 물었다.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있다.” 라미가 대답했다. “거꾸로.” 두 팔은 소매에 끼워졌지만 목 구멍은 허리에 내려와 있다. “한쪽에는 보디슈트를 입고, 다른 쪽에는 셔츠를 입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줌〉으로 대화 중이었기에 그녀가 일어서자 나는 옷과 소품들을 어떻게 착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정수리에는 요정의 베레모처럼 보이는 것이 얹혀 있지만 실제로는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가 만든 안면 마스크였다. 그는 라미의 남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로, 호텔 방 뒤편에서 작은 나무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라미의 모든 손가락에는 반지가 겹겹이 끼워져 있었다. “나는 항상 반지를 낀다.” 그녀가 말한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여러 겹의 팔찌가 짤랑거린다.

라미는 건축 비엔날레 개막식 참석차 이곳에 왔다. 2015년에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는 트럭을 운반하던 바지선을 전세 내어 녹음실과 선상 레스토랑을 갖춘 수상 하우스 파티, 아트 프로젝트, 공동 식당 공간인 바지날레Bargenale를 조성하고 미국 래퍼 A$AP 로키와 영국 뮤지션 제임스 라벨 등의 손님을 초대했다.² 2019년에 그녀는 「라미랜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LAMYLAND: What Are We Fighting For?」를 갖고 돌아왔다. 이 복싱 설치미술에는 여러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 행사를 위해 디자인한 아홉 개의 샌드백이 매달려 있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는 “우리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로, 힘겨운 한 해를 버텨낸 이 시기에 매우 적절한 주제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품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라미가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더불어 살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올해 라미는 비엔날레에 관객으로 참석하지만 8월 말에 이 도시로 돌아와 큐레이터 파올로 로소가 기획한 ‘떠다니는 영화관Floating Cinema’에 참여할 예정이다. 작은 어선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베네치아 석호 한가운데에 대형 스크린을 띄우고 부둣가에서 멋진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그녀는 귀띔했다. 라미는 물 위의 영화제를 위한 90분짜리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 라미는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릭 오웬스의 2020 가을 겨울 쇼에서 가짜 머리를 들고 다녔다. “휴대전화, 돈, 담배. 내게 필요한 건 다 들어 있다.” 당시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2) A$AP 로키는 2008년부터 라미의 친구이자 협업자였다. 『앳. 롱. 래스트.ASAP At. Long. Last. ASAP』 앨범 커버에서 그는 라미가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다.

나는 라미와 통화할 때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 그녀는 석호 프로젝트에 쓸 몇 가지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7월에 LA에 올 계획이지만 정확히 무엇을 찍을지는 아직 모른다고 했다. 영화가 될 수도, 그냥 동영상이 될 수도 있단다. “혹시 내가 LA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거 알고 있나?” 그녀가 묻는다. LA에 살던 시절 라미는 패션 감각, 파티, 여러 하위문화와 민족을 아우르는 포용성으로 이 도시에서 신화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일흔일곱의 그녀는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며 이 도시의 떠오르는 예술가, 디자이너, 창작자 들을 지원하고 격려한다.

라미는 1944년에 프랑스 쥐라에서 태어났다. 기숙학교에서 헨리 밀러의 작품 (“책은 엄청 섹시하다.”)을 읽으며 영어를 익힌 그녀는 졸업 후 카바레 댄서로 일하다가 1968년 5월에 파리에서 시위에 참가했다.³ 1970년대 후반에 뉴욕으로 이주해 〈스튜디오 54〉 같은 나이트클럽을 드나들었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돈 없이 “뉴욕에서 멋지게 살기는” 어렵지만 로스앤젤레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고 했다. “오빠는 리비에라 해안가의 뉴욕 같은 곳이라고 했다.” 라미는 수전 손택과 존 디디온 같은 작가들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 끌렸다. 디디온은 자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에서 이 도시를 불멸의 장소로 만드는 동시에 강력히 비판했다. “LA에서 음악, 문학,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1979년에 LA로 이사했다.

“나는 항상 함께해야 하거나 함께하고 싶거나 내게 놀라움을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려 노력했다.”

라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여러 의류 회사를 설립했고, 산타모니카 대로에서 〈투순투노Too Soon To Know〉라는 매장을 운영했다. 1991년 즈음에 개업한 〈레 듀 카페Les Deux Caf.〉는 알 파치노, 데이비드 린치, 레니 크라비츠, 마돈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 최고의 배우, 음악가, 예술가 들이 모이는 장소로 전설이 되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주차장과 아무 표시 없는 철제문 등 이곳의 모든 것은 보란 듯이 비밀스러웠다. “〈레 듀 카페〉를 처음 지을 때 그곳은 주차장 부지였다.” 라미가 설명한다. “나는 이곳을 정원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 순간부터 너무나 마법 같은 행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휑한 주차장은 이 도시에서 가장 환상적인 핫스팟으로 탈바꿈한다. 행복한 우연에 의해 모든 일이 술술 풀린 듯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울 만큼 열심히 일했다. 운이라는 것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또 그녀는 호기심이 매우 강하며, ‘방랑벽’이 있어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많다. “내가 일본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게 믿겨지나?” 그녀는 조만간 일본에 가기를 원한다. “나는 항상 함께해야 하거나 함께하고 싶거나 내게 놀라움을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려 노력했다.”

(3) 2019년 파리 패션 위크 기간에 라미는 망코 파리의 카바레로 돌아왔다. 그녀는 복싱용 주먹 보호 붕대로 온 몸을 감싸고 예술가 장 비체와 함께 춤추는 공연을 두 차례 진행했다.

라미는 2003년에 로스앤젤레스를 떠났다. “릭 오웬스가 파리로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으로 이사했다.” 그가 누구인지, 우리 대화가 뻔히 들릴 것 같은 방 뒤편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그의 성까지 붙여서 불렀다. (오웬이 파리로 간 이유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모피 회사 〈레비용Revillon〉의 예술 책임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로스앤젤레스를 사랑하는 라미는 이 도시에 처음 찾아온 손님을 데려갈 만한 명소를 줄줄 읊었다. 베니스 해변의 스케이트 공원과 산책로, 그녀가 손가락에 문신을 새겼다는 팜스프링스, 전설의 샤토 마몽. “계곡에도 꼭 데려가야 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게 LA 이야기를 할 때 라미는 꼭 “당신이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당신이 있는 LA로 돌아갈 거다! 나는 그때 당신이 있는 LA를 떠났다. 이런 식으로. 이 도시를 그리워하는 여성이 찾은 나와의 작은 연결점이었다.

웨스트 할리우드에 있는 릭 오웬스의 옷 가게에서 라미의 조수인 재닛 피슈그룬트가 〈리졸리Rizzoli〉에서 출판된 멋진 그림책 「릭 오웬스: 가구Rick Owens Furniture」 한 부를 내게 보내왔다. 수년간 라미는 남편과 함께 가구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실용적이고 편안한 가구라기보다 예술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에 가까웠다(LA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최근의 전시회에는 대리석, 콘크리트 및 소뼈로 만든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 책은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가구 화보와도 비슷하지 않다. 토스카나, 두바이, 몬트리올, 사해를 거치는 여행기, 다니엘 레빗과 장 밥티스트 몬디노가 찍은 부부의 모습과 가족 사진첩, 아트북이 한 권에 담겼다. 알루미늄을 부어 만들었으며 엉덩이가 놓이는 위치에 두 개의 뿔이 솟아 있는 ‘뿔 의자’ 사진 옆에는 황금 충전재에 여러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라미의 앞니가 클로즈업되어 있다.⁴ 수정 재질의 변기, 담배꽁초, TV 리모컨은 부부의 집에 있는 물건을 찍은 것이다. 〈오웬스코프〉의 본사가 있는 플라스 뒤 팔레 부르봉(프랑스 국회의사당 부지) 소재의 5층 건물 일부가 두 사람의 집이다. 공장에서 지게차를 몰거나 생모리츠의 눈 속을 걷는 라미의 사진도 있다.

책 속 사진에 붙은 설명이 한두 단어로 되어 있어서 라미에게 몇 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1995년 12월, 할리우드’라 적힌 사진에서 라미는 1950년대 머그샷처럼 보이는 두 개의 커다란 사진 앞에 서 있다. 한 무더기의 팔찌를 낀 그녀의 왼팔은 골반을 짚고 있고 오른손은 담배를 끼운 채, 마치 그녀가 담배 광고에 나오는 화려한 스타이기라도 한 듯 높이 들려 있다. 그녀는 모델 같다. “이 사진은 내가 〈레 듀 카페〉를 짓던 중에 찍었다. 그때 길 건너편에 릭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가 첫 번째 패션 라인을 발표할 무렵이었다. 컬렉션이라 하기도 뭣했다.” 두 사람은 그 스튜디오에서 함께 살고 일했다. 오웬스와 라미에게는 치열한 창작의 시기, 즉 ‘축제의 시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다. 내가 예쁘게 나오기도 했다.”

“공연을 하고 싶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넓은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2013년 벨기에 몽스’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 시리즈에서 라미는 거대한 대리석 판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이곳은 벨기에와 프랑스 사이에 유일하게 남은 검은 대리석 채석장이다.” 그녀가 설명한다. “지하로 60미터를 내려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이너마이트로 대리석을 채취한다.” 그녀는 릭 오웬스의 가구 라인에 사용할 크고 흠 없는 대리석 판을 찾으러 그곳에 갔다. 나중에 그것은 침대와 의자, 테이블로 만들어졌는데 그 무게가 상당했다. 라미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가장 아름다운 표본(‘줄무늬가 없는 것’)은 어떻게 찾는지 금방 깨우쳤다. 그러다 그녀의 화제는 하얀 시벡 대리석으로 만든 아부다비의 거대한 모스크, 검정 대리석이 검정이 된 이유(석탄과 관련이 있다)로 넘어갔다가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액체 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콘크리트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말한다. 사실 어쩌다 나온 이야기 몇 가지가 이어지다가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기도 하고 딴 길로 새기도 했다. 라미와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2016년 4월, 생파고 퐁티에리 에베니스테리 다곤’이라 적힌 사진에서 라미는 공장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있다. 청소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 “다들 트럭을 타고 어디 가버린 모양이다.” 그녀가 말한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면 내가 그냥 장난 삼아 했던가?”

(4) 라미에게 수은 충전재를 금으로 교체하라고 처음 권한 사람은 LA의 한 주술사 치과 의사였다. “하나를 원하다 보면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그런 거 있지 않나.” 그녀가 2015년에 『컷』에서 한 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라미의 생활과 계획도 팬데믹으로 크게 바뀌었다. 그럼에도 지난 1년 사이 그녀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티파티에서 영감을 받아 킴 카다시안과 함께 허니 머스터드 치킨(직접 키운 벌로 꿀을 얻었다)을 만드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브롱크스에서 활동하는 요리사, 미식가 집단 〈게토 개스트로Ghetto Gastro〉가 참여했다. 〈몽클레어 + 릭 오웬스〉 컬렉션 출시를 돕기 위해 주문 제작한 관광버스를 타고 오웬스와 함께 밀라노에 다녀오기도 했다.⁵ 다시 말해 라미의 삶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자기만의 목소리나 스타일을 구축한 다음에는 그 안에 갇히기 십상인 여느 아티스트들과 달리 라미는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고 있다.

내년쯤에 그녀는 딸 스칼렛 루즈, 베니스에서 활동 중인 비주얼 아티스트 니코 바셀라리와 함께 결성한 음악 그룹 라바스카LAVASCAR의 투어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입말(라미가 랭스턴 휴즈, 에텔 아드난 등의 시를 읊조린다)과 동물 소리(루즈가 낸다)가 뒤섞인 그들의 음악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소음 밴드다.” 그녀가 말한다. 작년에 라트비아와 조지아에서 계획했던 공연이 팬데믹으로 무산되었지만 라미는 하루빨리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공연을 하고 싶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작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일 때가 있다. 하지만 넓은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나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마치 내가 여러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들어간 것 같다. 니코가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도구인 드럼을 갖고 있어서 좋다. 덕분에 나는 마음껏 웃을 수 있다.”

웃음은 실제로 공연의 일부다. 무엇보다 그녀의 웃음에 매혹된 큐레이터는 웃어달라며 라미를 아부다비에 초대하기도 했다. 라미에게 베두인 부족의 전통을 소개하면서, 위기의 시기가 닥치면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가진 사람이 누군가의 웃음을 읽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고 한다. 물론 라미가 그곳에 가서 웃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불경기, 전쟁, 질병이 닥치면 베두인족은 웃음을 읽는다. 그 웃음을 통해 문제가 해소될지, 아니면 고통이 좀 더 이어질지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서 누군가 라미의 웃음을 읽고 앞으로 닥칠 일을 예언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럴 가능성에 마음을 열었다. “말없이 웃음만으로도 뭔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분명히 깨닫게 될 거다. 그러면 누군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

(5) 라미와 킴 카다시안의 협업은 또 있다. 두 사람은 『언아더AnOther』 잡지에 팬데믹 봉쇄 기간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고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내일 봐, 내 쌍둥이 원숭이.” 라미는 주로 이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5) 라미와 킴 카다시안의 협업은 또 있다. 두 사람은 『언아더AnOther』 잡지에 팬데믹 봉쇄 기간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고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내일 봐, 내 쌍둥이 원숭이.” 라미는 주로 이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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