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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문제적 물건

정원 요정의 기이한 은둔의 역사.
글 by John Ovans. 사진 by Cecilie Jegsen.

“은둔자는 7년간 한 장소를 떠나서는 안 되며 누구와도 말을 섞어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몸을 씻거나 닦아서도 안 되며 머리털과 손발톱은 자연스레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격리 기간의 흔한 일상과 헷갈리지 않도록 위 인용문의 출처를 밝히자면, 고고학자 윌리엄 겔 경의 책 「1797년의 호수 여행A Tour in the Lakes Made in 1797」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은둔자’는 부유한 지주에게 고용된 개인(대개 농부)으로, 지주의 사유지에 특별히 마련된 거처에 살았다. 그 직무 기술서에 따르면, 수도승 같은 차림을 하고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말아야 하며 조지 왕조 시대 영국의 목가적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개인 위생은 포기해야 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런 사람의 존재는 방문객들에게 영적 깨달음의 추구라는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정원에 은둔자를 두면 지주는 좀 더 지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채용은 쉽지 않았고, 기록에 따르면 근무를 시작한 지 딱 3주 만에 맥주를 손에 쥔 채 동네 술집에서 목격됐다는 은둔자도 있다.¹

관상용 은둔자 열풍은 금방 지나갔지만 ‘정원 도우미’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항상 촌스러움과 멋스러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영국의 상류층이 그 중심에 있었다. 1847년에 찰스 이샴 경은 독일에서 21개의 도자기 인형, 즉 그노멘피구렌gnomenfiguren을 들여와 자신의 바위 정원에 배치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정원 요정은 대개 턱수염이 있고 뾰족한 모자를 썼으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거나 초롱불을 들고 있다.

이샴이 이 외래종을 처음 들여온 후 세월이 흐르면서 정원 요정은 점차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저속한 장식품 취급을 받았다. 급기야 런던의 첼시 꽃 박람회는 정원 요정의 출품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금지령을 요정에 대한 지나치게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2015년에는 몸에 금칠을 한 요정 100명이 행사장 입구에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요정 애호가들은 팬데믹 기간에 공급망 붕괴와 수에즈 운하의 차단으로 극심한 요정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어차피 모두들 봉두난발의 은둔자로 살고 있으니 요정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1)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은둔자의 삶에 매력을 느낀다. 2017년에는 오스트리아 절벽의 350년 된 암자에 거주할 무급 은둔자로 슈탄 바누이트레히트가 채용되었다. 이 자리에는 50명 이상이 지원했다.

(1)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은둔자의 삶에 매력을 느낀다. 2017년에는 오스트리아 절벽의 350년 된 암자에 거주할 무급 은둔자로 슈탄 바누이트레히트가 채용되었다. 이 자리에는 50명 이상이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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