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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피어 리뷰: 장 뤼르사

섬유 전문가 재니스 제프리스가 20세기 태피스트리를 부활시킨 프랑스의 예술가 장 뤼르사를 소개한다.
Words by Janis Jefferies. Photograph by Robert Doisneau/Gamma-Rapho/Getty Images..

장 뤼르사(1892~1966)는 태피스트리가 기념비적인 예술이며 프레스코화를 보듯 그것을 감상해야 한다고 믿었다. 1920년대 미국에서 회화로 명성을 떨친 그는 1930년대부터 판화, 시, 도자기와 함께 태피스트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싼 태피스트리를 생산하는 유럽의 대형 공방들이 경제적 생존력을 잃고 큰 손실을 입고 있던 가운데, 뤼르사는 죽어가는 태피스트리 예술을 되살린 큰 업적을 남겼다.1 그는 수 세기의 태피스트리 전통을 이어가는 프랑스 오뷔숑을 기반으로 삼아 태피스트리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도입했고, 구상에서 완성까지 필요한 단계를 줄이기 위해 실제 사이즈의 카툰(태피스트리를 준비하며 그리는 밑그림을 나타내는 용어)을 이용해 직접 작업을 했다. 그는 양모를 두껍게 사용하고 색상을 적게 사용함으로써 직조 과정을 단순화했다. 뤼르사가 태피스트리에서 거둔 성공은 호안 미로와 페르낭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이 예술적 형태로서 태피스트리의 가능성에 관심을 갖도록 영감을 주었다.

내가 뤼르사의 태피스트리를 처음 본 것은 런던의 캠버웰 예술공예 학교 학생이었던 1974년이었다. 그의
「세계의 노래(Le Chant du Monde)」는 1957년부터 1966년
까지 제작한 매우 섬세한 태피스트리 10점으로 이루어진, 선지자적 면모를 담고 있는 연작이다. 이 작품은 고대의 우주론뿐만 아니라 핵 종말의 공포와 같은 그 시대의 위기들을 묘사하며 언젠가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남긴다. 나는 뤼르사가 내러티브와 텍스트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런던 근처의 공군기지에서 일어난 핵무기 반대 시위인 그린햄커먼 평화 캠프를 주제로 한 직물 공예작품을 선보였다.

2013년에 나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회 섬유예술 트리엔날레에서 뤼르사의 태피스트리 「시간(Le Temps」(1958)을 걸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내가 학생 시절부터 동경하던 그의 작품을 그렇게 가까이서 접한 것은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뤼르사는 1962년부터 1995년까지 국제 태피스트리 비엔날레를 조직한 스위스 로잔의 국제 고대 및 근대 태피스트리 센터(ICAMT)의 설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로잔은 태피스트리와 섬유예술의 수도였다. 뤼르사는 그만의 언어로 서양 현대 태피스트리를 이끌었고 전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1 )

뤼르사는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에 현대적인 미학을 접목했다. 그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혁신적인 입체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순수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 뤼르사는 이에 대해 “작품에서 주제를 없애는 것은 문장에서 동사를 없애는 것과 같다. 의미가 사라지면 작품이 미칠 수 있는 시적인 영향도 모두 사라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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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르사는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에 현대적인 미학을 접목했다. 그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혁신적인 입체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순수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 뤼르사는 이에 대해 “작품에서 주제를 없애는 것은 문장에서 동사를 없애는 것과 같다. 의미가 사라지면 작품이 미칠 수 있는 시적인 영향도 모두 사라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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