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작업하면서, 유니애크는 벽 속에 파묻혀 있던 원래 돌계단의 일부를 발견하여 인상적인 캔틸레버형의 계단을 복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겨울 정원이 된 곳에서는 원래의 서까래가 온전하게 발견되었고, 이것 역시 철사로 된 붓으로 조심스럽게 복원되었다. 방의 배치를 다시 정할 때는 벨기에의 유명한 건축가 빈센트 반두이센(46쪽 인터뷰)의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이 컬래버레이션한 결과 평면도가 단순하게 바뀌었다. 분할되어 있던 커다란 방들을 원래대로 되돌렸고, 방들 사이의 입구 공간을 다시 열었으며, 극적인 열린 공간과의 사이에 뜸을 두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응접실을 만들었다.
촉감을 강조하며 편안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반두이센의 영향을 받은 것은 18세기와 19세기에 파묻혀 있던 오크 재질의 바닥을 드러내고, 난간을 칠하지 않은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치장 벽토 역시 흰 도료의 일종인 디스템퍼로 덧입혀, 얇은 층이 점차 쌓이면서 원래 벽토의 질감이 훼손되지 않게 했다.
“어디에 내놔도 책임질 수 있게 복원하는 게 중요했어요.”라고 유니애크는 말한다. “창문틀에서부터 문짝 하나까지 모든 디테일이 적절해야 하는 거죠. 뼛속부터 옳다는 확신이 들어야 해요. 그때부터는 집을 21세기에 맞게 변신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돼요. 이를테면 나는 각각의 방에 딱 한 가지 색만 썼는데, 천장 돌림띠나 다른 벽토 작업이 새삼스럽게 두드러지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이는 유니애크가 건물의 규모와 웅장함을 인정하면서도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취한 많은 조치 중 하나였다(심지어 1층의 천장 높이가 10피트다).1 “천장을 실제보다 훨씬 낮은 것처럼 다루었어요.” 유니애크는 그동안 남편(<해리 포터> 영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헤이먼이다)과 함께 수집한 상당한 수준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어떤 식으로 벽에 걸지를 정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가구 역시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되듯이,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편안하고 만만한 18세기, 19세기 영국 작품뿐 아니라 20세기의 프랑스 조명에서부터 카레 클린트나 폴 헤닝센 등의 작품인 현대 스칸디나비아 가구들까지 골고루 들여놓았다. “시간을 들여서 모은 것이라는 티가 나게 가구를 배치해요.” 그녀가 말한다. “오랫동안 집에서 쓰던 식탁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죠. 여행에서 사 올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정말로 시기와 날짜, 스타일이 섞여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성공한 앤틱 딜러라면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 것은, 어쩌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일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윌트셔의 폰트힐 수도원에 두기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나무 벤치다. 이 벤치야말로 유니애크가 집을 꾸미기 위해 취해온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접근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면 인상적인 벽돌과 겨울 정원의 무성한 식물에 정신을 빼앗길 수도 있겠지만, 이내 정교하게 조각된 이 벤치의 등받이나 팔걸이–한 세기 반 넘게 사용하면서 길이 든–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집과 마찬가지로 이 벤치도 1860년에 제작되었다. “실용적이고 단순하면서 수도원의 분위기가 풍기죠.” 그녀가 말한다. “그런데도 유쾌하고 장난스러워요. 작게 보면, 여기엔 내가 이 집에서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구현되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