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손의 몇 안 되는 소유물은 이 집의 수집품에 정점을 찍는다. 한 쌍의 좁은 유리케이스 속 풍뎅이들, 원래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노가 여배우 엘레오노라 두세에게 준 선물이라는, 똬리 튼 뱀이 전등갓을 잡고 있는 청동 램프, 크리스티앙 베라르가 그린 기자 마리 루이제 부스케(그녀는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를 소개했다)의 초상화. 그것은 열여덟의 잔손에게 어머니가 준 선물이었고 당시에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쿠튀르의 동화’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준 작품의 디자이너에게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가 패션계의 거물들과 함께 일하던 시기에 이 그림은 부적과 같은 물건이었다. 겐조에서 수습 생활을 할 때도,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와 잠시 함께 했을 때도, 새롭게 선보인 에밀리오 푸치의 패션 컬렉션과 로로 피아나의 여성 의류 재창조에 참여했을 때도. 그러나 30년 전에 시작된 무늬와 컬러가 가득한 잔손 자신의 라인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아주 적은 양만을 생산하고 있다. 자신의 맞춤 작업실과 수십 개의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 그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다시 딸에게 물려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유행을 피한다. 보물에 둘러싸인 파스티의 은신처처럼 말이다.
“지금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내게 그것은 항상 가격에 걸맞은 품질을 갖춘 물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세상에는 품질이 좋은 물건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의 집에 모던 스타일이 없음을 지적하며 그가 말한다. 견고한 품질과 오래 지속되는 아름다움. 잔손은 아파트의 수집품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하지만 둘 사이에는 명확히 공통점이 있다.
5년 전까지 텅텅 비워두었던 그의 개인 방에도 장식품이 들어왔다. 18세기 철제 프레임 캐노피 침대 뒤에는 마마 카세의 세네갈 사진 스튜디오에서 구한 흑백사진이 한쪽 벽에 모여 있고 다른 쪽 벽에는 끝없는 책 선반이 보인다. 사이드 테이블에도 파스티의 책 무더기가 쌓여 있다. 노란 꽃 가발을 쓴 어린 소년을 찍은 이토 바라다의 1미터 길이 사진 액자는 바닥에 받쳐놓았다. “여기는 벽에 더 이상 공간이 없다.” 잔손이 한탄한다.
커플의 유물 가운데 많은 것들은 세상을 여행하다가 집에 가져오게 된 기념품들이다. “과거에는 비행기에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가지고 탈 수 있었다.” 잔손이 담배를 한 모금 빨며 파스티가 런던에서 팔 밑에 끼고 비행기를 탔다는 책장을 가리켰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이 책장은 1.5미터 높이에 검정 옻칠이 되어 있다.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고 가구를 가지고 탈 수도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 그가 모로코, 우즈베키스탄, 포르투갈, 멕시코에서 가져온 비단이 걸린 벽을 가리킨다. “둘 다 여행깨나 다녔다.” 그는 자수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쉰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물건이 없고 그 사연을 아는 사람은 오직 움베르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