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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iors

홈 투어:
스테판 잔손

미니멀리스트로 알려진 디자이너가 어떻게 맥시멀리즘을 지향하는 밀라노 신전의 수호자가 되었을까?
Words by Laura Rysman. Photography by Christian Møller Andersen.

홈 투어: 스테판 잔손

스테판 잔손이 오밀조밀하게 채워진 밀라노 분더카머wunderkammer의 문을 여는 순간 나올 수 반응은 입을 떡 벌리는 것뿐이다. 해어진 비단이 씌워진 17세기 금박 목제 의자에 놓인 박제 악어가 뻣뻣한 자세로 당신을 노려본다. 골동품 시장에서 헐값에 구입한 물건이다. 벽을 완전히 차지하는 유리 케이스에는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머리쓰개, 아메리카 원주민의 독수리 깃 전투모, 중국의 머리 장식 등 온갖 깃털이 진열되어 있다. 25년 전에 로베르토 페레갈리가 재설계한 아파트에 붙박이로 제작된 천장 높이의 책 선반이 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2만 권이 넘는 장서는 예술, 역사, 기타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 손으로 짠 카펫이 나무 바닥을 뒤덮고, 액자에 조각조각 담긴 채 벽을 장식하고, 심지어 커튼봉에도 걸려 공간에 어둠을 드리우는 동시에 이 19세기 중반에 지어져 몇몇 방에는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의 창을 냉기로부터 지킨다. “카펫 위에 카펫 위에 또 카펫을 깔았다.” 잔손이 말한다. “그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벽을 가린 책들과 겹겹의 양탄자로 단열된 여러 개의 방에는 노후된 아름다움을 지닌 수집품이 넘쳐난다. 고대 로마의 조각상, 2천 년도 넘은 서아프리카 노크 지역의 조소 작품, 겉에 솔방울 비늘을 깔끔하게 붙여 만든 19세기 알프스 장식장. 그러나 유행에 저항하는 화사한 색감의 드레스를 만드는 62세의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잔손은 이 모든 황홀한 보물이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할 수만 있다면 수도사의 방에 살고 싶다.” 그가 작은 그림들과 책이 놓인 선반에 기댄 벨벳 자카드 안락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한다. “열여덟 살에 나는 내 첫 아파트를 온통 새하얗게 칠했고,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로 그런 휑한 환경에서 행복을 느꼈다.” 벽과 천장에 빛바랜 프레스코 무늬가 남아 있는 이 공간은 잔손이 지난 38년간 자신의 ‘배우자’라고 부른 움베르토 파스티의 작품이다. 그는 파스티를 이탈리아 여행 때 어느 쌍둥이 형제에게 소개받았다.(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올 만한 낭만적인 첫 만남에서 파스티는 형제 가운데 하나와 눈이 맞았고 잔손은 다른 쌍둥이와 사귀게 되었지만 이 쌍둥이는 각자의 연인이 서로의 운명임을 깨닫고 둘을 소개했다.)

파스티는 작가, 정원 디자이너이며 열정적이고 박학다식한 골동품 수집가다. (“움베르토는 먹고살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가족 출신이다.” 잔손은 이렇게 귀띔했다.) 35년 전, 이 커플이 이사를 들어오면서 그는 이 아파트의 방 다섯 칸을 개인 박물관으로 변모시키기 시작했고 새로 구한 보물을 계속 채워 넣었지만 더 이상 이곳에서 살지는 않는다. 이 커플은 탕헤르 남쪽 모로코의 시골에도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 탕헤르의 도시 개발로 뿌리 뽑힌 수많은 구근 식물을 이식했다.

과거에는 잔손의 밀라노 작업실 밖 그늘진 한 조각 땅에 한정되었던 정원에 대한 파스티의 열정은 골동품을 향한 애정만큼 점점 커져갔다. 20년 전에 그는 해변가에 있는 탕헤르의 집을 계속 돌보기 위해 그곳으로 이사했다. 그때 이후로 파스티는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가 되어 리졸리 출판사에서 「다시 찾은 에덴: 북부 모로코의 정원」이라는 책을 냈다. 탕헤르 프로젝트의 화려함이 상세히 담겨 있는 이 책은 현재 그들의 집이 자리 잡은 언덕을 짙은 푸른색으로 뒤덮고 청록색의 바다까지 쭉 이어진 허리 높이의 자생 붓꽃 사진으로 시작된다.

“내가 그쪽으로 이사하라고 권했다.”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잔손이 말한다. “그 집은 욕망을 계속 꿈틀거리게 한다.” 그래서 여전히 호리호리한 소년 같지만 이제는 두꺼운 테의 짙은 색 안경이 돋보이는 반백의 잔손은 대부분 자신의 것이 아닌 유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나는 수집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빛바랜 청록과 주홍의 낡은 17세기 터키 러그가 덮인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며 말한다. “움베르토는 학자이고 나는 그에게 열중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나도 그의 수집품들이 마음에 들지만 직접 시도할 생각은 없다.”

잔손의 몇 안 되는 소유물은 이 집의 수집품에 정점을 찍는다. 한 쌍의 좁은 유리케이스 속 풍뎅이들, 원래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노가 여배우 엘레오노라 두세에게 준 선물이라는, 똬리 튼 뱀이 전등갓을 잡고 있는 청동 램프, 크리스티앙 베라르가 그린 기자 마리 루이제 부스케(그녀는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를 소개했다)의 초상화. 그것은 열여덟의 잔손에게 어머니가 준 선물이었고 당시에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쿠튀르의 동화’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준 작품의 디자이너에게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가 패션계의 거물들과 함께 일하던 시기에 이 그림은 부적과 같은 물건이었다. 겐조에서 수습 생활을 할 때도,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와 잠시 함께 했을 때도, 새롭게 선보인 에밀리오 푸치의 패션 컬렉션과 로로 피아나의 여성 의류 재창조에 참여했을 때도. 그러나 30년 전에 시작된 무늬와 컬러가 가득한 잔손 자신의 라인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아주 적은 양만을 생산하고 있다. 자신의 맞춤 작업실과 수십 개의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 그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다시 딸에게 물려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유행을 피한다. 보물에 둘러싸인 파스티의 은신처처럼 말이다.

“지금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내게 그것은 항상 가격에 걸맞은 품질을 갖춘 물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세상에는 품질이 좋은 물건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의 집에 모던 스타일이 없음을 지적하며 그가 말한다. 견고한 품질과 오래 지속되는 아름다움. 잔손은 아파트의 수집품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하지만 둘 사이에는 명확히 공통점이 있다.
5년 전까지 텅텅 비워두었던 그의 개인 방에도 장식품이 들어왔다. 18세기 철제 프레임 캐노피 침대 뒤에는 마마 카세의 세네갈 사진 스튜디오에서 구한 흑백사진이 한쪽 벽에 모여 있고 다른 쪽 벽에는 끝없는 책 선반이 보인다. 사이드 테이블에도 파스티의 책 무더기가 쌓여 있다. 노란 꽃 가발을 쓴 어린 소년을 찍은 이토 바라다의 1미터 길이 사진 액자는 바닥에 받쳐놓았다. “여기는 벽에 더 이상 공간이 없다.” 잔손이 한탄한다.

커플의 유물 가운데 많은 것들은 세상을 여행하다가 집에 가져오게 된 기념품들이다. “과거에는 비행기에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가지고 탈 수 있었다.” 잔손이 담배를 한 모금 빨며 파스티가 런던에서 팔 밑에 끼고 비행기를 탔다는 책장을 가리켰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이 책장은 1.5미터 높이에 검정 옻칠이 되어 있다.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고 가구를 가지고 탈 수도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 그가 모로코, 우즈베키스탄, 포르투갈, 멕시코에서 가져온 비단이 걸린 벽을 가리킨다. “둘 다 여행깨나 다녔다.” 그는 자수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쉰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물건이 없고 그 사연을 아는 사람은 오직 움베르토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수도사의 방에 살고 싶다. 열여덟 살에 나는 내 첫 아파트를 온통 새하얗게 칠했고,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로 그런 휑한 환경에서 행복을 느꼈다.”

"할 수만 있다면 수도사의 방에 살고 싶다. 열여덟 살에 나는 내 첫 아파트를 온통 새하얗게 칠했고,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로 그런 휑한 환경에서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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