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의 집을 들여다보면 왠지 금기를 어기는 뜻한 짜릿함을 느낀다. 아무도 몰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관찰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 관음증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적인 공간 속 타인의 모습에서 분명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대도시에서 특히 필요한, 낯선 사람들과의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앨프레드 히치콕의 1954년작 스릴러 「이창Rear Window」에서 이러한 강요된 친밀감은 도시 속 좁은 공간에 대한 관음증과 이웃 간의 도덕적 책임(또는 책임의 결여)을 은유한다. 다리를 다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제프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맨해튼 아파트 창문으로 이웃들을 훔쳐보며 시간을 보낸다. 같은 곡을 강박적으로 반복 연주하는 작곡가, 아파트 안에서 걷는다기보다 춤을 추듯 이동하는 발레 댄서, 상상 속 손님과 만찬을 즐기는 외로운 여자를 관찰한다. 결국 그가 한 이웃이 아내를 살해했을지도 모를 정황을 목격하면서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은 한계에 이른다. “내가 저 창을 통해 똑똑히 봤다니까요.” 제프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추리를 납득시키기 위해 이렇게 주장한다. 그는 타인의 집에 쳐들어가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허용하는 서류인 수색영장을 발급받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꿰맞춘다. 창문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미심쩍은 행동에 대한 문화적 비유다. 하지만 은밀함이라는 요소가 제거되면 어떻게 될까? 네덜란드에서는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문화에 뿌리내려 있다. 16세기에 개신교 개혁가 장 칼뱅의 등장으로 시작된 칼뱅주의 종교 공동체는 시민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숨겨야 할 비밀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고, 커튼을 불온한 물건으로 취급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암스테르담의 주택가에는 오늘날에도 커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밤에 운하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일종의 오락거리나 다름없다. 현대사회에서는 서로를 ‘훔쳐보는’ 기발한 방법이 수없이 등장하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통로라는 창문의 기능은 예전만 못 하다. 하지만 미지의 주방이나 거실을 엿보는 것만큼 불온한 쾌감을 주는 것은 드물다. 살인 사건을 해결할 단서를 찾기보다 기껏해야 참고할 만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는 게 전부라 해도 말이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내가 가장 아끼는 것 건축가 디베도 프랜시스 케레가 자신의 소중한 의자를 소개한다. Arts & Culture 좋은 느낌만 억지 긍정에 대하여. Arts & Culture 익명의 인플루언서들 우리는 인스타그램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인플루언서 산업에 대한 짧은 설문을 주고, 익명으로 답을 들어보았다. 인스타그램을 위한 삶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어처구니없는 점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읽어보자. Arts & Culture 명백한 사실 문학적 특권 면책고지 Arts & Culture 행복한 중간, 해피 미디엄 평균 예찬. Arts & Culture 의도를 품을 것 의식과 루틴 / 일상습관을 구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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