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면 이렇게 말해주죠.
‘친구들, 나를 모르는군. 당신들은 나를 몰라‘”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의 판지 작품이 내려다보는 거실의 옆면을 따라 기다란 나무 탁자가 놓여 있고, 반두이센은 거기 앉아 있다. 그는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엄격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활력적이면서 따뜻하다. 자신의 시그니처라 할 복장, 즉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검정-표준적인 건축가 유니폼의 캐주얼 버전-으로 입고서 그는 무장해제 상태로 마음을 열고 있다. 심지어 그는, 자기가 쓰는 야구 모자는 날이 추울 때 면도한 민머리로는 절대로 나다니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는 농담을 건네왔다.
그렇다고 그가 무뚝뚝하지 않다는 건 또 아니다. 그는 앤트워프와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서 오래된 건물을 이리저리 다듬어 ‘럭셔리 아파트’로 파는 데 자신의 스타일이, 그것도 생기 없는 형태로 너무 많이 인용되는 것에 대해 짜증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이처럼 파사디즘(facadism, 우아한 건축물의 전면 외관을 보존하는 관행-옮긴이)을 보여주기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이른바 ‘벨기에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는 미학으로 돈을 벌어보려는 개발업자들 때문에 생겨났다. ‘벨기에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2010년대 초, 반두이센과 그의 동료 악셀 베르보르트가 예시한 미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들은 반두이센의 접근법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일쑤였고, 그의 최고 작품이 지닌 섬세함도 부족했다. 표면은 너무 반드르르했고, 흰색은 너무 번쩍거렸으며, 검정은 단조로웠다. 반두이센 본인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납공간은 전체 공간을 개방시켜주는 핵심인데, 그들에게는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내 작품이 영감을 많이 자극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벨기에에는 닮은꼴들이 너무 많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내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나의 접근법이나 수많은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엄청나게 복잡합니다.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세상이 내 작품에는 편재해 있죠. 그것이 바로 나라고 하는 사람을 반영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그들이 그러는 것에 대해 사소한 성가심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내 작품은 좀 더 심오하다고 할 수 있어요. 더 다층적이죠.” 반두이센은 다소 오만하게 말한다. “베낄 수가 없어요. 운 좋게도 내게 이 선물이 주어진 겁니다. 이 스타일, 감촉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나 자신, 내 고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반두이센의 집에는 검정이나 흰색이 거의 없다. 어떤 색이든 파란색, 녹색, 갈색과 섞여 탁하게 녹여진다. “대부분의 색은 목재, 푸른 돌, 우리 주변의 사물, 식물 등의 물질에서 나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멕시코의 모더니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찬양자예요. 멕시코에 있는 그의 프로젝트를 다 둘러보았을 정도죠. 그러나 그는 색을 쓸 때 멕시코 문화를 반영합니다. 그 색들이 문화적 맥락 안에서 그의 건축을 떠받치는 겁니다. 벨기에에서는 색을 쓰는 방법이 다른 거죠.”
그의 집은 디너파티를 열고 많은 손님을 수용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는 그런 식의 초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초대를 할 때도 대개는 몇몇 친구들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그는 집을 안전한 안식처, 고요한 섬으로 묘사하며, 일이 없을 때는 웬만하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의 동료 중 많은 이들-1980년대와 1990년대에 패션과 건축의 중심지로서 앤트워프의 명성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앤 드묄레미스터, 드리스 반노튼 등의 창조 세대-이 밀집 개발된 플랑드르에서 교외로 빠져 더 큰 집으로 옮겨갔지만, 반두이센은 딱히 도시를 떠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집이 이미 시골집 같은 안온함을 주기 때문이다.
반두이센은 내년에 60세가 된다. 그는 외동이며, 작년 여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연로하지만, 여전히 아들의 작업에서 사업적인 부분을 봐주고 있다. 반두이센에게는 자녀가 없다. 그는 자녀를 갖고 싶어 할까? 이 건축가는 일, 예술, 책, 명상, 집 그리고 다시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입을 쉬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놀랄 만큼 오래 침묵했다. “나는 운명을 믿는 것 같아요.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가 파블로를 안으며 말했다. 파블로는 그가 기르는 닥스훈트 세 마리 중 하나다. 셋 모두 누가 봐도 주인에게 헌신적이었다. 계속해서 방어적으로 주변을 맴돌다가 주인이 관심을 주지 않으면 짖어댔다. 대화의 분위기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내 개들이 아이들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죠.” 그가 웃었다. “그래도 녀석들이 내 어린 아가들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별달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는 게이에요. 그리고 보수적이죠. 내 작품을 보면 변형된 형태의 보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내가 내 아이들을 교육하려 했다면 문제가 많았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매일 함께 있고 싶어 했을 텐데, 그건 불가능하죠. 누군가를 사귀지 않는 한, 내가 부모님을 봉양한 것처럼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을까요? 그 사람을 통해서도 친구, 사촌, 조카 들이 생길 겁니다. 나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 거예요.”
그가 몇몇 고객과의 유대 관계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면, 그들 역시 그의 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그의 공간에 거주하며, 그의 세계의 일부를 소유한다. 카니예 웨스트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흥미로운 사람일 것이다. 1 웨스트는 앤트워프의 모든 것에 매료되어 이 도시의 거주 지역 한곳에 집을 사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니까 그가 반두이센에게 전처인 킴 카다시안과 함께 지낸 캘리포니아 집에 관한 공동작업을 의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요즘 카니예는 앤트워프에 들르면 반두이센의 집을 방문해 나무를 이어붙인 다락방에 머무르곤 한다. 살면서 본 가장 섹시한 방이라고 그가 묘사했던 그 방이다.
“알겠지만, 카니예는 천재예요.”라고 반두이센은 말한다. “예술가죠.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정서적인 사람이에요. 그는 극단성을 지니고 있고, 그와 그런 이야기도 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죽이 잘 맞는다는 거예요. 우린 친구예요. 서로를 좋아하죠. 그를 따라잡는 것이 늘 쉬운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그는 나를 안전지대 밖으로 끌어내줍니다.”
2주 전, 웨스트는 바로 이곳 반두이센의 거실에 나타나서는 가구를 몽땅 밖으로 들어내달라고 했다. “그는 정말로 공간의 본질, 신성한 건축 그 자체, 수도원에 들어가 있었어요.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공간의 순수성 속에 서 있었죠.”라고 그가 되새겼다.
“감사하죠.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들, 훌륭한 대화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이거예요. 이게 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