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요제프 보겔 박사와 아내 스테판카를 위해 지은 보겔 아파트의 첫인상은 전혀 다르다. 방치되어 있던 세믈러 아파트와 달리 보겔 아파트의 내부는 공들여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집의 내부는 식당의 노란빛이 도는 트래버틴 대리석 벽과 호두나무보다 더 붉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벚나무 자재로 더 밝아 보인다.
하지만 도마니츠키는 두 집은 상당 부분 공통점을 보인다고 한다. “보겔 아파트는 방들이 마주 보며 열리는 방식과 벽난로와 거울처럼 독특한 모티브로 구현된 세로축 대칭이 인상적이다.” 방문객들이 실제로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로스가 자신의 건축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해 가구를 사용한 방식이다. 사실 로스는 직접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었다. 보겔 아파트에 있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다이닝 룸의 구형 전등, 긴 붙박이 소파,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스타일의 벽난로와 로스가 디자인한 의자 복제품이다. 그중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크니슈위마Knieschwimmer”안락의자가 있는데, 속을 채우고 덮개를 씌운 해먹 모양으로 앉으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군이 체코슬로바키아와 필젠을 점령하자, 부유한 유대인 세믈러 일가는 그들의 저택을 버려두고 도망쳤고 이후 나치의 군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던 1945년 5월 6일, 서쪽에서 진격해온 미군이 필젠을 탈환했다. 독일군이 일제히 밀려나고 이 도시에는 해방의 기쁨이 흘러넘쳤다.
미군은 세믈러 아파트에 들어가 게오르그 폰 마예프스키 중장에게 무조건 항복을 발표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예프스키는 아내와 부하들,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실의 책상에서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할리우드에서 대본을 썼을 법한 그 순간, 마예프스키는 감춰두었던 리볼버를 꺼내 몸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곤 피바다 속으로 푹 쓰러졌다.
조심스레 귀 기울이면 오늘날에도 정교한 대리석 벽을 타고 울리는 그날의 총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