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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sue 36 (Kor)

홈 투어:
아돌프 로스

이 오스트리아 건축가는 장식을 배제한 모더니즘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테리어를 찾아 마크 베이커가 체코 필젠으로 향했다.
사진 by Christian Møller Andersen.

당시 그는 많은 이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다. 그가 비엔나의 중심인 미하엘 광장에 벽의 중간까지 매끈한 대리석을 붙이고 격자 형태로 단순하게 아무 장식 없는 창문을 배치한 건물인 로스 하우스를 설계했을 때 비평가들은 “눈썹 없는 창문”이라며 조롱했다. 보수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 건물을 혐오했다.

그러나 로스의 대담함은 많은 숭배자를 만들어냈다. 그의 건물은 왕족들에게 사랑받던 19세기 고전 건축과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기하학적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 장식을 강조하는 아르누보 건축 양식에 반기를 든 형태였다. 경제적 성공과 현대적 취향을 과시하고 싶은 신흥 부유층인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집 설계를 의뢰하러 로스에게 몰려들었다. 전쟁 전후로 그는 비엔나, 프라하, 필젠 등의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도시의 개인 저택과 인테리어를 설계했다.

당시 호황을 누리던 산업 중심지이자 〈스코다 엔지니어링〉의 본사가 있는 필젠에는 특히 그의 작품이 많다. 로스는 이 지역에서만 최소 13개의 아파트나 빌라를 설계했고, 그중 8개가 나치 점령기와 공산 정권하에서 보존되어 이후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여 하나씩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세믈러 아파트와 보겔 아파트는 이 스펙트럼의 양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세믈러 아파트는 아직 재단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보겔 아파트는 로스의 설계대로 완벽히 복원되었다.

로스는 조각상이나 페디먼트 같은 장식 요소들은 세월이 흐르면 구식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짧은 기간 종잡을 수 없는 아르누보의 격식을 갖춘 사촌인 비엔나 제체시온 예술 운동의 일원이었으나 1890년대 미국을 다녀오면서 현대건축의 경쟁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루이스 설리번 같은 건축가가 만들어낸 아찔한 초고층 건물의 실용성에 감탄했고, 이는 그의 건축 이론의 핵심을 담은 1910년의 강의 ‘장식과 범죄’에 영향을 미쳤다. 로스는 장식은 사용된 재료의 본질적이며 영구적인 특징이 대리석의 무늬나 나무판의 색이나 결 같은 독특한 요소를 통해 배어 나온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1931년 헬레나와 휴고 세믈러를 위해 지은 세믈러 아파트는 고급 자재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그 아름다움으로 오늘날의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현재 재단장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아파트에는 식당과 거실, 여자 화장실만 보존되었지만, 섬세한 줄무늬가 인상적인 벽면의 풍부한 대리석과 고급 목재 패널, 붙박이 목조 가구는 여전히 진정 효과를 발휘한다. 여자 화장실의 노란빛 느릅나무 자재는 발랄한 느낌을 주고, 식당과 거실에 사용된 나뭇결이 살아 있는 짙은 색 호두나무 자재는 화려한 인상을 준다.

필젠의 웨스트 보헤미안 갤러리의 큐레이터이자 로스 전문가인 페트르 도마니츠키는 로스의 독특한 재능은 “뛰어난 공간 상상력이라고 한다. 당시는 오픈 플랜 주거 개념이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지만 로스는 미닫이문을 공간에 도입했다. “ 아파트의 특징은 거실과 식당의 연결성, 공간의 대칭성, 축이 교차하는 장소에 배치한 기둥과 벽난로, 식탁으로 공간을 강조한 방식이다.” 도마니츠키는 말한다.

로스는 장식의 필요성을 무시했지만 광택을 낸 목재와 석재 패널 등 다양한 자재를 활용해 인테리어를 마감했다.
브르노 출신의 유명한 근대 건축가 아돌프 로스(1870-1933)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10여 년간 활동하며 의도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건물의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하는 기능주의의 선구자였다.

1928 요제프 보겔 박사와 아내 스테판카를 위해 지은 보겔 아파트의 첫인상은 전혀 다르다. 방치되어 있던 세믈러 아파트와 달리 보겔 아파트의 내부는 공들여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집의 내부는 식당의 노란빛이 도는 트래버틴 대리석 벽과 호두나무보다  붉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벚나무 자재로  밝아 보인다.

하지만 도마니츠키는  집은 상당 부분 공통점을 보인다고 한다. “보겔 아파트는 방들이 마주 보며 열리는 방식과 벽난로와 거울처럼 독특한 모티브로 구현된 세로축 대칭이 인상적이다.” 방문객들이 실제로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로스가 자신의 건축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해 가구를 사용한 방식이다. 사실 로스는 직접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었다. 보겔 아파트에 있는 그의 작품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다이닝 룸의 구형 전등,  붙박이 소파,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스타일의 벽난로와 로스가 디자인한 의자 복제품이다. 그중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크니슈위마Knieschwimmer”안락의자가 있는데, 속을 채우고 덮개를 씌운 해먹 모양으로 앉으면 공중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있다.

2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군이 체코슬로바키아와 필젠을 점령하자, 부유한 유대인 세믈러 일가는 그들의 저택을 버려두고 도망쳤고 이후 나치의 군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던 1945 5 6, 서쪽에서 진격해온 미군이 필젠을 탈환했다. 독일군이 일제히 밀려나고  도시에는 해방의 기쁨이 흘러넘쳤다.

미군은 세믈러 아파트에 들어가 게오르그  마예프스키 중장에게 무조건 항복을 발표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예프스키는 아내와 부하들,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실의 책상에서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할리우드에서 대본을 썼을 법한  순간, 마예프스키는 감춰두었던 리볼버를 꺼내 몸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곤 피바다 속으로  쓰러졌다.

조심스레  기울이면 오늘날에도 정교한 대리석 벽을 타고 울리는 그날의 총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vol.36

This story is from Kinfolk Issue 36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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